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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 비슬산  

 

 

비슬산

 

 

비슬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가창면·유가면·옥포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대구 분지 남쪽을 에워싸는 비슬산괴 중 최고봉은 비슬산의 대견봉(大見峰, 1,083m)이다. 도성암 위에 위치하는 천왕봉(天王峰) 역시 대견봉과 거의 같은 높이라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나온다.
비슬산의 주봉은 북쪽으로부터 천왕봉~대견봉~조화봉(照華峰, 1,058m)~관기봉(觀機峰, 990m)으로 이어진다.

비슬산은 800m 이상에서 평탄면이 나타난다. 그 결과 평탄면 양사면은 가파르고, 이러한 지형의 영향을 받은 하천은 비슬산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흐르고 있다.
육산(肉山:흙산)이면서도 산세가 장중하고, 대견봉과 조화봉·관기봉 사이에는 341헥타르에 달하는 비슬산 자연휴양림이 있어 빼어난 자연 경관 속에서 삼림욕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가 아름답고, 또 봄이면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고지에 30만 평에 걸쳐 철쭉, 참꽃(진달래)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연출한다. 달성 문화원에서는 비슬산을 널리 알리고 참꽃 사랑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매년 4∼5월에 참꽃축제를 열고, 민속놀이·먹을거리 장터 등의 부대 행사를 개최한다.
그 밖에 여름에는 안개 계곡, 가을에는 단풍과 참억새, 겨울에는 얼음 동산이 유명하다.
스님바위·코끼리바위·형제바위 등의 이름난 바위와 유가사(瑜伽寺)·소재사(消災寺)·용연사·용문사(龍門寺)·임휴사(臨休寺)·용천사(湧泉寺) 등의 사찰이 산재한다.
냉천계곡(冷泉溪谷)과 천명(天命)·장군수(將軍水) 등의 이름난 약수터가 있다.

현황
1986년 2월 22일에는 달성군 군립공원으로,
1993년 1월 18일에는 자연휴양림으로,
2003년 12월 13일 달성비슬산암괴류(達城琵瑟山岩塊流)가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비슬산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이루어져 특이한 경관을 보이고 있다. 길이 2㎞, 폭 80m, 두께 5m에 달하고 암괴들의 직경이 약 1~2m, 사면경사 15°로 국내에 분포하는 암괴류 중 규모가 가장 커서 학술적·자연학습적 가치가 크다.

비슬산 이름 유래
비슬산에 관한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문헌은 『삼국유사』로, 신라시대 인도 스님들이 와서 산을 보고 '비슬(琵瑟)'이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비슬은 인도의 범어(梵語)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덮는다'는 뜻으로 한자로 쓰면 포(苞)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포산'이라 했고 지금도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포산을 쓴다.
그런데 일연은 『삼국유사』에 주(註)를 남겨 "그 지역 사람들은 소슬산(所瑟山)이라 불렀다."고 적었다.
'소슬'과 '비슬'은 통하는 바가 있다.
소슬은 '솟다'에서 왔고, 비슬은 '(닭)벼슬'에서 왔다.
둘 다 우뚝하다, 둘레에서 가장 높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비슬산은 둘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이 담겼다.

『경상도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에서는 비슬산의 한자 표기가 현재 사용하는 비슬산(琵瑟山)과는 다르다. 비슬산의 '비'가 '비파 비(琵)'가 아니라 '도울 비(毗)'다. 즉 비슬산(毗瑟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발간 이후의 고문헌에서는 모두가 비슬산(琵瑟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고장 전통 가꾸기』(1981년 간행)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도식 발음으로 비슬(琵瑟)이라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설에 비슬산은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비슬산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으나 비슬산 정상의 일부는 물이 차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그곳의 형상이 마치 비둘기처럼 보여 ‘비둘산’이라고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변하여 전해오고 있다.

관기봉, 조화봉 이름의 유래
한편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포산이성(包山二聖)’이란 내용으로 관기와 도성, 두 선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신라에 관기와 도성이라는 두 어른이 살고 있었는데 어디 사람인지는 모른다. 포산이라고도 하고 비슬산이라고도 부르는 산맥의 남쪽 모롱이에 관기는 암자를 지어놓고 살고, 북쪽의 굴속에서 도성은 살고 있었는데, 서로 떨어지기 10리쯤 되는 거리였다. (······) 만약 도성이 관기를 만나려면 산중의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파닥거리며 휘어지는 때를 택했으니, 그 나무들의 모양을 보고 관기는 도성을 마중 나갔으며, 그 반대로 관기가 도성을 만나려면 산중의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보다 북쪽으로 굽으며 파닥거릴 때를 택했으니, 그 나무들의 모양을 보고 도성은 또 관기를 마중 나갔더라.

달빛을 밟고 서로 찾아 운천을 희롱하던
두 옹의 풍류가 몇백 년이 지났는고
연하 낀 골짜기엔 고목만 남아 있고
찬 그림자는 어긋버긋 맞이하듯 하구나.

 

 

관기봉은 정상부 전체가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크기는 높이가 30미터쯤이고 둘레가 100여 미터가 넘는 네댓 평 정도의 평활석면(平闊石面)이다. 바로 건너편에 조화봉이 있다. 흐릿하게 흘러가는 낙동강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절을 지을 당시 당나라 사람들이 인근에 자리한 정상 봉우리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바라보니 중국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 봉우리에 ‘비칠 조(照)’에, ‘아름다울 화(華)’, 즉 조화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김시습, 이곳 비슬산을 노래하다.

 

산중 물이 산을 꺼려서 속세로 흘러가는데
세속 승려는 세속이 싫어 푸른 구름에 돌아오네.
물아, 너의 성품은 본래 맑고 깨끗하지 않더냐.
인간 세상을 향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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